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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니의 일상 글

그 교회 권사님은 왜 그러는 걸까?

by 북마니와 영어, 독서, 그리고 일상의 기록 2022. 9. 5.

내가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아주 얼마전까지 풀리지 않는 궁금점이 있었다.  문장의 시제가 과거형이므로 이제 이 궁금증은 풀렸다고 보면 된다. 평생 나를 따라다니던,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수도 없고 해결 방법도 찾을수 없던 그 문제가 궁금한가? 

 

출처 : pixabay

 

 

 

궁금하면 500원 .. 

쓰잘데기 없는 말장난은 집어 치우고  문제에 대해 말해 보겠다. 

교회에서는 그렇게 기도도 잘하고 헌금도 잘하고 교회 현관문도 잡아준다는 그 분들, 권사님 ,장로님, 집사님,  또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교회에 매주 출석하시는 분들, 선량하고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인사하시는 그분들이지만, 내 이익앞에서는 단 돈 500원도 포기할수 없고, 가난하고 약한 사람은 구둣발로 밟아버릴수 있을만큼의 잔임함과 냉혹함을 가지고 있으신분들. 교회 문은 잘 잡아주지만, 식당 종업원과 서비스 계통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반말 기본 장착과 하대함이 삶의 디폴트값이 신 분들.  (교회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는것을 말하고싶다. 몇명의 악인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그런 분들은 도대체 교회에 가서 십자가 앞 하나님께 뭐라고 기도하냐는 것이다.  성경에는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고, 그들에게 하는 것이 내게 하는 것이라고 써있는데. 정말  글자 그대로 과부와 고아만  돌보면 된다고 생각해서, 자신 보다 약한 위치의 사람들은 막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pixabay

 

우리 교회에 컨설팅 일을 하는  건실해 보이는 남집사가 있었다.  그런데 그 분은  먹튀를 했다. 컨설팅비만 홀랑 받아먹고 일을 끝내지도 않고 다른 주 로 튀어 버렸다.  일을 마무리 지어달라고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카톡은 씹어버리면 그만 이었다. 돈만 받고 일은 마무리 하지 않은채, 일을 맡긴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일은 나몰라라 해 버리는 것이다. 

이 남집사는 건실한 모습으로 교회에 잘 출석하고, 교회에서 행사가 있을때는 자비로 피자도 쏘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좋은 이미지를 건설해갔다. 그래서 이 남집사가 이렇게 먹튀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사람들은 당황스럽고 놀라워했다.

도대체 이 남집사는 하나님 앞에서 뭐라고 기도했을까?  먹튀를 잘 할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을까?  사람들 등쳐먹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 했을까?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위해서 양심이라는 것이 있어야하는데  양심이 무엇이길래,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볼때 양심이 있냐 없냐를 판단하는것일까? 

사전에서 양심 ( 良心 )의 정의를 살펴보면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이라고 했다 .이 사전의 정의대로라면 최소 고등학교 까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본인들의 행동이 그르고, 악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니 알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알고있는것을 자신의 양심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인가? 

알만한 사람들이 사회적, 도덕적 기준에 맞지않는, 양심에 따르지 않는 이유를 심리학 김경일 교수님의 강의를 보고 알게되었다. 어쩌다 어른에 김경일 교수님은 악인들의 종류와 행동, 그것을 outsmart 할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셨다. 또 양심의 개념에 대해 정의해 주셨다. 이 방송을 보고 나는 나의 아주 오랜 궁금함을 해소할 수 있었다. 

 

김경일 교수님은 종교적 양심과 심리학에서의 양심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알려주셨다. 

 

종교적 양심 : 내가 잘못했을 때 신의 처벌에 대한 두려움

심리학에서 양심 : 연민과 애착이 없음

 

이 방송을 보고 풀리지 않았던 그 오랜 궁금증이 해결되었다. 두가지로 해석되었는데 교회에서 기도도 열심히하고 선한 이미지로 사는 분들,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는 사람들, 이런 부류들은 종교적 양심만 있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헌금하지 않으면 선한척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종교적 양심만 있을뿐, 심리학에서의양심인 연민과 애착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눈으로 부터 피할수 있다고 생각되는 사회에 나와서는 자기의 욕망과 이기심이 시키는데로 약자를 무시하고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인냥사는 것이다. 

 

두번째의 해석은 건실했던 남집사를 보면서 깨닫겠 되었다. 이런 부류들은 종교적 양심이 없다. 교회사람들을 선택해서 사기를 친것부터 이것을 말해준다. 열심히 교회 앞자리에에서 기도는 했으나 하나님을 기만한것이다. 어떻게  교회사람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를 해결해준다하고  돈만 홀랑 들고 먹튀를 할수있겠는가?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양심도 없는 그냥 교회에서 비즈니스좀 해보겠다는 심리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다.  또 심리학에서의 양심, 연민과 애착도 없다. 연민과 애착이 없으니 본인이 튀어 버렸을때,  자신을 믿고 일을 맡겼던 사람들이 앞으로 겪게될 곤란함과 힘듦이 보이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것이다. 비즈니스 교인으로서의 비즈니스 좀 해서 한 몫 단단히 챙겨서 날랐다. 

내 오랜 궁금증은 해결이 되었으나, 마음이 많이 불편하고 힘들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로 판단한다.또  이런 종교적 양심, 심리학적 양심을 가진이가 누구인지를 구별할수 있는 혜안과 지혜과 아직은 없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 아 그 분 참 선하고 좋으신 분이야, 그 권사님 너무 선하셔"라고 한다. 그러나 ,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 사람의 행동거지를 판단할수있는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속모습을 알수없다. 그리고 이미지 메이킹 전략에 속아 넘어간다. 그리고 후회한다. 그리고 또 이 것을 되풀이한다.   

다만, 내가 지금 할 수있는 일은 책을 읽고 공부하며 깨닫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종교적, 심리학적 양심이 없는 이들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고 우리의 마음을 보호할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