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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니의 일상 글

나는 정말 명랑소녀 인가?

by 북마니와 영어, 독서, 그리고 일상의 기록 2022. 8. 29.

아니, 이제는 정말 명랑 아줌마인가? 라고 제목을 짓는것이 현재 나의 모습에 맞겠다. 한 15년 만 젊었었도 이제목을 고수하겠으나, 이제 나는 그 누가 보아도,
아무리 잘봐줄려고 노력해도 나는 '완연한 아줌마' 이니, 그래 제목을 수정해야 겠다.
나는 정말 명랑 아줌마 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명랑 아줌마가 아니다. 사실은 명랑한척 하는 아줌마이다.
항상 명랑한척한다하면 뭔가 아주 없어보이니, Sometimes 명랑한척 아줌마라하면 나의 자존심의 구겨짐이 조금 펴지는 것 같기는 하다.

어제 온 문자에도, 굳이 네, 감사합니다 ~ 이렇게 공손하게 쓸필요가 있었을까? 원래는 ^^까지 추가 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까지 친밀함을 표시하고 싶은 상대가 아니었으니, 내 손꾸락들을 자제시켜
웃는눈은 쓰지 않았다.

Pexel- Sky Miller


다른 사람들의 문자를 보면 아주 짧게 "네 " 하고 말던데, 나는 왜 명랑하지도 않은 이 시추에이션과 내 감정을 속이고 명랑학척 답톡을 하는 것일까? 이런 행위는 나의 감정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기만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을 기만한다면 너무 멀리 가는 것 같고.... 내 마음 깊이 들여다보면
나는 이렇게 명랑한척 하면서 " 나 괜찮아요.. 나 잘있어요' 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 상대방은 묻지도 않는데 나는 왜 굳이 나의 안부를 애써가면서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일까?
이것은 결국 나의 어린시절로 돌아가는 것같다. 마음은 매일 울고 싶었지만, 웃는 가면을 쓰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갔던 내 어린날들, 그것이 결국은 습관이 되어, 이제는 카톡의 웃음표시가 나의 가면이 된것은 아닐까?

두번째 이유로는 내가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다라는 내색을 하고 싶지 않기때문이다. 나의 이런 감정표현은 관계에서 어색함을 남기고 "우리사이 멀어질까봐 " 라는 불안함이 내제되어있는듯 하다.

또 하나는 나의 불편함이 "너의 마음을 힘들게 할까봐 " 이다. 나의 힘듬을 너에게 전가해서 너의 삶의 무게가 두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무의식중에 깔려있는것 같다. 이것 역시 나의 어린시절과 관련이 있다. 엄마의 삶은 이미 고난과 쓴 잔으로 흘러넘쳤기에 나는 엄마에게 힘을 주고, 그 ' 고난한 삶의 무게에 더함을 하지 않겠다'라는 의지들이 내 내면에 쌓였다.이로인해 난 나의 고난과 슬픔을 절대 나누지 않는 "고난 독립형 인간" 이 된것이다.

나의 이 철이 풍만한 어린 아이의 마음과는 달리 엄마는 나에게 감정쓰레기통 역할을 맡게 하였다.
이제는 늙고 힘없는 불쌍한 나의 엄마는 내 어린시절을 회상할때 종종 나올 주인공중 하나가 될듯하다.

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는 명랑소녀역할을 해도 되지 않을만큼의 세월의 풍파와 아픔에 충분히 맞써 싸워온 아줌마이므로 더이상의 명랑소녀도, 명랑 아줌마도 아닌, 눈웃음 표시하고 싶지 않을때는 안해도 되는 , 물결표시가 필요없을때는 쓰지 않아도 되는, 단답형만으로도 나의 생각을 말해도 그들의 마음까지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어도 된다.

짧게 말하고 싶을때는 짧게 말하고 쓰는 단답형 인간이 되어도 된다.

"다정이 병"이라는 말은 어쩌면 나에게 많이 해당될수 있다는 것을 잊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