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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니의 일상 글

나르시시스트는 상호성의 법칙에도 가면을 씌운다.

by 북마니와 영어, 독서, 그리고 일상의 기록 2025. 1. 7.

나는 어릴적부터 사람들의 심리가 궁금했다.  나르시시스트한테 호되게 데이고 나서 그들의 심리, 나의 심리, 호구의 심리가 다 궁금했다. 우연찮게 로버트 치알디니의  웃는 얼굴로 구워 삶는 기술이라는 책을 인터넷에서 발견했지만, 여기서는 구하기  쉽지 않은 책이기에 읽는 것을 포기하다가, 저자나 한번 검색해보자라는 마음으로 밀리의 서재에서 찾아보았다. 그런데 럴수럴수 이럴수가 그 유명한 설득의심리학을 쓴 사람이 바로 저자였다. 우연찮게 웃는 얼굴로 구워 삶는 기술이라는 책은 어차피 읽을수 없으니 더 유명한 책을 독파하리라는 마음으로 그저께 부터 읽고 있다. 

 

나는  서문에서 부터 로버트가 좋아졌다. 그는 평생 사람들의 봉 노릇을 해왔다고 한다. 늘 행상이나 기금 모금인, 이런 저런 수완 좋은 사람들의 만만한 표적이었다고 한다.. 어.. 이거 어째 나 같은데 라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오랫동안 남의 말에 휘둘리며 살다가 설득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나랑 동기도 비슷하다. 나도 나르시시스트의 밭에서 한 인생을 산 사람으로써 더이상 당하고 싶지 않기에, 어떻게 나르들이 나를 웃는 얼굴로 구워삶았는지 알아보려고, 그래서 후일에는 더이상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석 버전인 설득의 심리학 책을 통해 구워 삶어지지 않는 기술을 배울수 있는게 더 땡큐였다. 

 

 

 

저자는 Part 2에서 상호성의 원칙을 설명한다. 상호성의 원칙이란, 우리는 다른 사람한테 뭔가를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면 우리도 호의로 갚는것, 누군가에세 생일 선물을 받으면 우리도 상대의 생일을 기억했다가 선물을 하고, 누군가 우리를 파티에 초대하면 우리도 파티를 열어 상대를 초대해야 하는 것이다. 한번 받으면 빚진 마음을 갖고 있기에 되 갚으려하는 원칙, 간단해 보이지만,  커다란 행동의 변화를 가지고 올수있는 큰 원칙이다. 어라. 이 원칙 나 들어본적이 있다. 내가 호구였음을을 깨우치게 하고 내 삶에서 더이상 호구노릇을 하지 않도록 해준 아담 그랜트의 책 기브 앤 테이크에서 설명된 호혜의 법칙과 같은 것이다.  이 법칙이 강박관념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나역시 그랬다. 한번 받은 호의와 은혜는 기회가 오면 꼭 갚아주고 싶었다. 기회가 안 오는 것 같으면 시간을 땡겨서라도 기회를 만들었다. 나는 한번 입은 은혜는 잘 잊혀지지가 않는다.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있는 성격이다. 아마 어렸을때 읽은 은혜갚은 까치에서 너무 큰 감명을 받아서 인가라는 생각도 잠시 든다. 

많은 사람들에게 강박관념처럼 꼭 지켜지는 이 법칙이  나르시시스트들에게도  적용되는 가는 새로운 문제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사람과 사귀고 관계를 이어갈때, 과연 이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상호성의 법칙이 지켜질까? 

이미 앞에서 밝힌것 처럼 나는 나르 밭에서 살았던 호구순이였다. 문제는 내가 호구인줄도, 내가 나르들에게 둘러쌓여 이용당하고 휘둘렸다는 것 도 몰랐다는 것이다.마냥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좋은게 좋은거고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한쪽뺨을 맞으면 다른 한쪽뺨도 대주라는 무골호인같은 말들만 철썩같이 믿으면서 살았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상처와 해를 주는 지도 ,얼마만큼의 상처가 이미 가슴에 쌓여있는 줄도 모르는채 말이다. 그러다 베프라고 생각했던 여동생이 나르시시스트+소시오패스였다는것,  상냥함과 따뜻함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나를 우습게 알고 함부로 대하는 상 또라이엿다.   그러나 나는 내가 호구인줄 몰랐기때문에, 함부로 굴어도 화도 낼줄 모르고 우습게 대해도 얘가 요즘 스트레스가 많은가 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다. 오히려 그 상또라이의 비위를 맞추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으니 호구중의 호구라고 말해도 모자람이 전혀 없다.

나도 물론 화가 날때도 있었지만그 상또라이가 처음에 나한테 엄청 잘해주고, 뭘 주고, 밥해먹인 일들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처음에 나한테 그렇게 퍼주던 기버중의 기버인 애가 나쁜애일리가 없다고 부탁하지도 않은 excuse 들을 마구마구 해주었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이 상또라이는 나에게 그 어떤 give 의 행위도 하지 않고 받아먹기만 했다. 물론 이상한 느낌과 억울하고 형평성이 안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쁘니까, 스트레스 많이 받으니까 등등 으로 excuse 바리게이트를 쳐주고 나혼자만 주는 행위를 계속 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처음에 잘 지내던 관계로 돌아갈것이라고, 내가 잘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호구짓을 멈추지 않았다. 

 

기브앤 테이크 책에서 마침내 알았다. 그들도 기버의 행동, 누군가에게 먼저 줄수있는 먼저 베풀수있는 행동이 용기있고 멋진 행동이라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도 기버의 가면을 쓰고 기버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타겟으로 잡았던  착한 사람이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오면 점차 그들의 주는 행동을 줄이고 마침내 멈추어 버린다. 그러면 주고 받던 관계가 어느새 주고 또 주기만 하는 어리둥절한 호구만 남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정리해서 다시 말하면 나르시시스트 또는 테이커들도 상호성의 법칙을 알고 있고, 먼저 주는 행동을 멋진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앞에서 웃는 얼굴로 주고 베푸는 사람이 꼭 착한 사람이나 기버가 아닐수도 있다는 것을 꼭 알아두자. 어리둥절한 호구가 되는 관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 앞에 이사람이 진짜 기버이냐 아니냐를 분별할줄 알아야 한다. 처음에 잘해줬다고 해서 그 사람이 끝까지 좋은 사람이 아닐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별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분별하고 골라낼줄 알았다면 누군들 호구가 되었겠는가. 

 

그래서 아주 중요한 분별의 법칙을 알려주겠다. 누군가가 처음에 잘 하고 간이고 쓸개고 다빼주고, 어려울때 그 누구보다 도와줄것 같은 행동을 했다하여도 그 행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해 간다면 나도 그 관계에서 변해야 한다. 그 사람이 어느샌가 받아 먹기만 하고 있다면, 나도 주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받아 먹기만 한다는 것은 이미 난 그 관계에서 만만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리고 주는 것을 멈추어야 한다.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미안해 할 필요도 없다. 원래 받아먹기만 하는 사람이 잠시 기버라는 가면을 쓰고 기버의 멋진 행동을 따라했을뿐, 그 사람은 처음부터 진심이 아니었다. 가짜 진심에, 기버의 가면을 쓴 나르시시스트, 테이커에게 미안함을 느낄 필요는 정말 1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