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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니의 일상 글

두 번 샀으면 한번은 얻어 먹는 60대 40 법칙

by 북마니와 영어, 독서, 그리고 일상의 기록 2025. 2. 13.

사람이 말이야, 쿨하게 베풀고 끝, 더이상 그것에 생각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좋은마음으로  시작된 호의에도 별 반응이 없으면 불러낸 것도 아닌데 어느새 머리속에 계산기가 나타나서 뭔가 안 맞는 부분을 타닥타닥 맞춰보기 시작한다. 

저번에 내가 이렇게 했지, 아니 그러고 보니 저저번에도 내가 선물을 줬는데..

주고 받음의 균형이 깨지면 억울한 마음이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입술도 뚱하니 내민채 말이다. 

 

 

과거의 착한 사람 병에 걸린 (어쩌면 아직도 진행중일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삐죽한 마음을 없애버릴려고 했다. "야 치사하게 준거 다 기억하고 있다가 지금 계산기 두드리는 너, 너무 못났보인다." 라며 억울이를 내 마음 깊숙히 숨겨 눌러 놓고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자물쇠까지 여러겹 달아놓았다.

내 마음은 돌보지 않은채, 언제가는 내 노력과 사랑을 알아주겠지라면서 주는 행위를 계속 했었던 것같다. 돌보지 않은 내 마음 억울이는 사라진게 아니었다.  구박을 받아 내 쫓겨 마음 한구석에 쭈구려 앉아있었을뿐 없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마음은 무시한채  착한병에 걸린 행동들을 했을때 또 다른 억울이들이 태어났다. 처음에는 억울이가 하나였는데 점점 많아지고 융합하여 몬스터 억울이가 되었다. 몬스터 억울이는 억눌러 왔던 마음에 문을 스스로 꽝꽝 때려부시고 "분노"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더이상 참을수 없는 불균등한 관계로 인한 분노와 그로인한 결과는 손절.

처음부터 꼬꼬마 억울이를 알아봐 주었다면 어떠했을까? 억울이의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만 줘 , 그만 베풀어!  라는 억울이의 말에 귀기울이고 행동들을 스톱했다면  몬스터 억울이가 탄생하지도 않았을것이다. 최소한 처음부터 싹수노란 그 사람을 알아차리는 눈과 지혜가 있었다면 불균등한 관계로 오는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내가 60을 주면 상대는 40은 줘야 한다고. 돈이 아무리 많은 사람이라도, 선척적으로 태어나길 주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일지라도 60퍼센트까지 주고도 상대방이 반응이 없다면 그 주는 행위를 멈추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하다, 어.. 이사람은 왜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마냥 의아해 하며 끌려다녀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내가 두번을 밥을 사면, 내가 두번을 선물을 주면 한번은 밥을 사고 작은 것에라도 보답할 수 있도록, 이번에도 밥값을 내기위해 손이 먼저 재빨리 지갑을열려고 한다면 그 손을 멈추어야 한다고 했다.60대 40`의 법칙을 지키지 못한다면받기만 하고 얻어 먹기만 하는 사람은 으례 이번에도 이 사람이 내겠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만나주는 것 만으로도 고마워 하겠지라고 생각한다. 

내 딴에는 돈 내라는 말을 하기가 부끄러워서, 성인이 된후 내가 한번 내면 다른 사람도 한번 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암묵적인 법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만, 그 법칙을 지키는 사람은 언제나 정해져있다. 이상한 자기애와 결합하여 " 너가 만나자고 해서 내가 만났으니 내가 만나주는 것을 밥값이라고 생각해"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아직도 이해할수 없고 과연 죽기 전까지 이해가 갈 까 싶다. 그러나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답이 되기도 한다. 이해 안가는 시험 문제를 죽기 살기로 붙잡어도 이해가 안되어 결국에는 그냥 암기하고 말아버리는 경우가있는 것처럼 그냥 이런 케이스의 인간들은 이해하기를 포기하면 된다. 

그리고 60대 40, "내가 두번 사면 한번은 너가 사는것"  이야말로 불균등한 관계로 인한 마음의 피폐해짐을 막을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며 내 마음의 가이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